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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와의 만남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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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
16:07
Apr 06 2026

2화 도하를 만나다 두번째



“하…! 한심한 자식.”


이 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지.


“지금 저한테 한 말이에요?”


선우는 인기만 믿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하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따지려고 했지만, 

신대표가 선우의 팔을 잡아 룸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는 강도하를 밀어냈다.


“강도하씨. 볼일 끝났으면 그만 가보지. 라이징 스타를 이런데서 만나다니 영광이지만, 

남의 일에 간섭할 이유는 없잖아? 만나서 반가웠어.”


신대표의 말에 강도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고개를 까닥 숙였다. 오만한 태도였지만, 

신대표는 특유의 넉살로 받아넘겼다.


“난 자기의 그 거만함이 마음에 들더라.”


데뷔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강도하의 스타성과 팬덤은 여느 톱스타에 뒤지지 않았다. 

그런 강도하를 일부러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강도하는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더니, 휙 몸을 돌려 어두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클럽 헬의 시크릿룸 안에는 연예계 대표 난봉꾼이라 불리는 H 그룹의 차남이 앉아있었다. 

그는 H 그룹이 소유한 업계 1위 광고회사 오리콘의 사장이기도 했다. 

연예계에는 그가 광고 출연을 빌미로 하룻밤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조금 전 강도하의 눈빛이 뭘 말하려고 했던 건지 

선우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자네가 유선우군인가? 듣던 대로 페이스가 신선하군.”


한 사장이 느끼한 웃음을 흘리며 선우의 얼굴과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신대표는 그런 한 사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사장님이 신경써주시면 틀림없이 훌륭한 보석이 될 거에요.”


한 사장의 두꺼비처럼 투박한 손이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하고 내리쳤다.


“많이 긴장한 거 같은데, 여기로 와서 좀 앉지.”


선우는 온몸에 빨간 불이 켜지는 걸 느꼈다. 선우가 얼음처럼 서 있자, 한 사장이 말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3집 앨범 내는 건 문제도 아니야. 우리 회사 광고에만 출연하면 슈퍼스타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거거든.”


그래도 선우가 꼼짝하지 않자, 신 대표는 한 사장이 앉아있는 소파로 선우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있어서 부끄러운가 봐요. 저는 이만 나가있을 테니 두 분이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어, 그래. 고마워. 신 대표.”


쾅.


선우와 한 사장만 남긴 채 시크릿 룸의 문이 닫혔다. 선우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차를 타고 오면서 신대표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광고에 출연해. 그렇지 않으면 에인젤은 해체될 거야.]


선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 사장은 둘만 남게 되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처음엔 다들 너처럼 굳어있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지. 

내 덕분에 스타가 됐으니까. 수치스러운 건 잠깐이야. 그 뒤에 올 큰 인기를 생각해.”


선우는 결심한 듯 입고 온 점퍼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러자 스키니 청바지에 하얀 면 티를 걸친 선우의 가늘지만 비율 좋은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사장은 그런 선우의 태도에 만족한 듯 크게 웃으며, 탁자에 놓인 위스키를 잔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한 사장이 위스키를 따르는 사이, 선우는 옷걸이에 점퍼를 걸어놓는 척하며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켰다. 다행히 한 사장은 제 기분에 취해 선우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탁.


위스키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한 사장이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 이제 재밌게 놀아보자고.”


밖으로 나온 신대표는 시크릿 룸의 문 앞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자존심 센 유선우가 당장이라도 뛰쳐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방 안에서 한 사장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신대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선우가 웬일로 이렇게 고분고분한 거지?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밴드를 해체하겠다고 협박까지 해놓았으니 책임감 강한 선우가 함부로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는 

없을 거라는 게 신 대표의 계략이었다. 그리고 그 계략은 통하는 듯 보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리자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한 신대표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하이톤의 콧소리를 장착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 이 피디님. 너무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한 번도 연락이 없으실 수가 있어요. 

나 삐지려고 했잖아.”


케이블 방송국에서 ‘황당한 도전’이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어서 오디션을 보고 있는데, 

아이돌들이 너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황당한 모험들을 직접 따라해 보는 내용이라 

체력 소모도 많고 다칠 위험도 있다고 했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케이블 방송국이었고 적은 출연료에 다칠 위험도 있었지만, 

신인 아이돌에게 자존심은 사치고 스케줄은 생명이라는 게 그녀의 철칙이었다. 

신대표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우리 애들은 시키면 뭐든 다 해요. 뛰라면 뛰고, 구르라면 구르고, 벗으라면 벗고. 하하하. 

자존심 같은 거 없어요. 누드 화보라도 있으면 찍을 판이라니까. 

예능 하나만 꽂아주면 그 은혜 평생 안 잊을게요.”


피디와의 통화에 온통 신경이 팔린 신대표는 누군가가 자신을 얘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복도 끝에서 우연히 신대표의 통화를 듣게 된 강도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때, 시크릿 룸의 문이 급하게 열리더니 홍당무처럼 얼굴이 새빨개진 선우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피디와 통화를 하던 신대표가 선우를 향해 소리쳤다.


“유선우. 너 어디 가. 당장 못 돌아와?”


신대표의 날 선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선우는 점퍼를 움켜쥔 채 무작정 화장실이 표시된 방향을 향해 뛰었다. 

지금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고 몸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그 곳뿐이었다. 

화장실 앞에 당도하자 선우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점퍼 주머니 안을 확인했다. 

다행히 휴대폰은 무사했다.


하지만 그때 거기 강도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건 스무 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손을 씻던 강도하가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비친 선우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수도꼭지를 잠근 후, 핸드 드라이어에 손을 말리기 시작했다.


슈우웅. 슈우웅.


“…필요해? …내가…?”


강도하가 뭐라고 말하는 거 같았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선우는 자신을 경멸어린 눈으로 바라봤던 강도하의 표정이 떠올라 짜증이 치밀었다.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부끄럽고 화가 났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핸드 드라이어에서 손을 떼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강도하가 선우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돈이 필요해? 그렇다면 내가 줄까?”


선우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기분에 말문이 막혔다. 

조금 전 한 사장이 있는 시크릿 룸 앞에서 마주쳤던 상황과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지금 하는 말 사이의 연관성이 머릿속에서 여러 개의 퍼즐 조각처럼 어지럽게 뒤섞이다 

하나로 맞춰졌다.


이 녀석도 게이였던 건가.


꼬여도 더럽게 꼬여버렸다.


선우의 눈에 의심이 가득하자, 강도하가 또박또박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돈이 필요하냐고?”


녀석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선우를 향해 길고 가는 손가락을 뻗었다.


흠칫.


강도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놈의 손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그대로 선우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도망쳐야 하나.


그러나 밖으로 나가자니 불같은 성격의 신 대표와 H그룹 차남이라는 난봉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어떤 결심을 하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이 먼저 선우의 볼에 닿았다.


“울었네?”


선우는 자신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녀석의 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쳐냈다.


내가 울고 있었나.


선우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물기에 젖은 눈꺼풀이 촉촉했다.


“이건 눈물이 아니라 억울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억울해서 울었다는 거잖아.”


“이런 상황이 너무 기가 차고 한심해서 그래요. 화가 나서.”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잖아.”


어이없는 놈이다. 조금 전까지는 경멸과 조롱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제는 돈을 주겠단다. 

선우는 이게 무슨 의식의 흐름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도 게이에요?”


잠시 말이 없던 강도하는 큭큭 소리를 내더니, 급기야는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내가? 이 강도하가?”


숨이 넘어가라 웃는 강도하를 보며, 선우의 두 볼이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게 아니면 뭐지?


지금 나한테 돈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불쌍해서?


자신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밀어 넣던 한 사장을 떠올린 선우는 발끈하고 화가 치밀었다. 

분명 강도하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제게 벌어진 일을 눈치 채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선우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돈이야 늘 필요하죠. 정말로 주시게요. 왜죠?”


강도하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며 말했다.


“나는 돈이 많고 너는 필요하니까.”


“필요하다고 하면 아무한테나 주는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돈이 많아요?”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H 그룹의 차남이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두꺼비라면, 

이 녀석은 늑대인 것이다.


교활하고 멋진 늑대.


멋진?


여기서 왜 그 단어가 나와.


유선우, 너 정말 정신이 어떻게 됐구나.


“미친놈.”


선우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이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놈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말해놓고 스스로도 놀라 자신보다 한 뼘이나 키가 큰 강도하를 올려보았다. 

분명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놈은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재밌는 녀석이네.”


“그런데 아까부터 왜 반말이세요?”


“그럼 인간 따위에게 존댓말을 하라는 거야?”


“인간 따위? 그런 당신은 인간이 아니고 뭔데.”


쾅. 쾅.


올 게 왔다.


선우의 뒤를 쫓아온 신대표가 화장실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야. 유선우. 너 당장 나오지 못해?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열 셀 때까지 순순히 나오지 않으면 앨범 얘기는 없던 걸로 한다. 하나…, 둘….”


순간, 선우의 머릿속에 에인젤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이, 민, 엘.


연습생 시절부터 4년을 동고동락하며 온갖 고생 끝에 데뷔한 나의 동료들. 

특히 제이가 이 일을 알면 뭐라고 할까.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네가 리더잖아.]


제이의 외침이 들리는 거 같았다.


그래, 내가 리더니까….


그러니까 도망칠 수 없어.


선우는 결심한 듯, 강도하로부터 몸을 돌려 화장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힘주어 당기기도 전에, 녀석의 손이 문고리에 닿은 선우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 돼지한테 가겠다고?”


“놔요.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돈이 싫다면 도망치게 해줄까?”


선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와달라고 누구에게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사람이 강도하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망설이는 선우를 눈치 챈 강도하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선우의 팔을 당겨 자신의 넓은 등 뒤로 감춘 후,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며 말했다.


“기다려. 일 분이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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